2025년 4월 22일, 많은 축구 팬들과 방송 시청자들이 충격에 빠졌습니다.
전 K리그 축구선수이자 JTBC ‘이혼숙려캠프’ 출연자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강지용 씨가
향년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.
그의 죽음은 단순한 비보가 아니라, 우리 사회가 외면한 진실을 다시금 드러낸 사건입니다.
🌟 축구선수 강지용, 13년의 필드 위 인생
1989년 인천 출생, 강지용은 인천남동초-제물포중-장훈고를 거쳐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,
2009년 포항 스틸러스에 5순위로 지명되며 K리그에 입성했습니다.
이후 부산 아이파크, 부천 FC, 강원 FC, 인천 유나이티드 등 다양한 구단에서 활동하며
총 13년간 측면 미드필더로 활약했죠.
그는 묵묵히 팀을 위해 뛰는 헌신적인 플레이어로 인정받았고,
U-20 국가대표로도 선발되었던 재능 있는 유망주였습니다.
📺 '이혼숙려캠프' 출연, 은퇴 후의 진짜 삶
그는 2025년 JTBC 예능 ‘이혼숙려캠프’에 아내 이다은 씨와 함께 출연했습니다.
방송에서 강지용은 경제적 어려움, 가족 간 갈등, 은퇴 후의 삶에 대한 고민을
모두 낱낱이 드러냈습니다.
가장 충격적인 고백은 은퇴 후에도 자신의 축구 연봉 약 5억 원을 부친이 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.
그는 방송에서 “정말 자다가 죽는 게 소원이다”, “이혼하고 싶고 죽고 싶지만, 딸 때문에 못 한다”고 했습니다.
그의 삶은 방송을 통해 비로소 비춰졌고,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과 응원이 이어졌지만
결국 그는 그 무게를 홀로 견디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.
👪 가족 이야기 – 그리고 권은비
많은 이들이 놀랐던 사실 중 하나는,
그가 바로 가수 권은비의 친척, 사촌 오빠였다는 점입니다.
2018년, 권은비가 ‘프로듀스48’에 출연했을 당시
강지용은 SNS에서 사촌 동생을 응원하며 투표를 독려하기도 했습니다.
권은비 또한 한 방송에서 “사촌 오빠가 축구선수였다”며
강지용을 자랑스럽게 언급한 적도 있습니다.
하지만 이런 관계조차 그가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를 덜어주지는 못했습니다.
💰 은퇴 선수의 현실 – “300만원 공장 일자리”
강지용 씨는 은퇴 후 월 300만 원 수준의 급여를 받는 화학물질 제조 공장에서
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지만, 현실은 냉혹했습니다.
축구 코치를 꿈꿨지만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 포기했고,
형의 보증으로 인한 수천만 원의 빚까지 짊어지게 되었습니다.
그는 방송에서 “나는 이젠 무너졌고, 도망가고 싶다”고 털어놨습니다.
이토록 절절한 고백이 있었음에도, 결국 그의 외침은 그를 구해내지 못했습니다.
🖤 장례, 축구계의 추모
빈소는 충남 천안 순천향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으며
발인은 4월 25일 오전 6시 30분, 장지는 천안추모공원으로 정해졌습니다.
유족으로는 아내 이다은 씨, 그리고 겨우 세 살 된 어린 딸이 남겨졌습니다.
그가 몸담았던 포항 스틸러스, 부천 FC, 강원 FC,
그리고 대한축구협회는 공식 SNS를 통해
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명복을 기원했습니다.
📣 우리가 외면한 진실 – 은퇴 선수의 ‘사후 지원 부재’
강지용 선수의 비극은 단지 개인의 죽음이 아닙니다.
은퇴 후 사회가 그들에게 제공하지 못한 지원 시스템의 실패를 상징합니다.
- 정체성 상실
- 경제적 무력감
- 가족 해체
- 심리적 고립
이 모든 요소들이 겹쳐진 순간, 그는 마지막 선택을 했습니다.
그가 남긴 유산은 단지 K리그의 기록이 아닌,
“이런 일이 더는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”는 경고입니다.
✅ 강지용, 그리고 우리 사회가 꼭 기억해야 할 것들
- 축구선수 이전에, 그는 한 사람의 남편이자 아버지였다
- 그의 삶은 혼자가 아니었다. 같은 고통을 겪는 수많은 은퇴 선수들이 있다
- 그가 떠난 자리는, 우리가 바꿔야 할 사회 시스템의 흔적이다
그는 마지막까지 “살아보려고 노력했다”고 말했습니다.
그 의지가 헛되지 않도록, 이제는 우리가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.
🙏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.
그리고 그의 딸이 훗날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기억할 수 있도록,
이 사회가 진정 바뀌길 바랍니다.